2000년 전 메시아는 이 땅 가운데 왔습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은 ‘예수=여호와는 구원이시다’ 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다고 나옵니다. [멸시] 라는 뜻은 사전적인 의미로 ‘업신 여기거나 하찮게 여기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을 살리시기위해 오신 예수님께서 사람에게 멸시를 받아 버림을 받았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되는 일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일이 실제로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왜 멸시하고 버렸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우리는 어떤 사람을 믿는다고 한다면 적어도 그 대상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알아가려 합니다. 그 사람을 알지 못하는데 “나는 당신을 믿습니다.” “나는 당신을 신뢰합니다.” 라고 말한다는 것은 어쩌면 굉장히 모순 된 말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무슨 말씀을 드리고 싶은거냐면 우리는 열심히 교회를 다니며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우리에게 와서 “당신이 믿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세요?” 라는 질문에 우린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요. 쉽게 말해 우리는 예수가 누구인지 알고 믿는지에 관한 부분입니다
얼마 전 한 청년을 심방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린 자연스럽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 이야기로 주제가 넘어갔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는 함께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다녀왔었기 때문이다. 그 일들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참 마음이 아팠다.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들이 일어났고, 그로 인하여 많은 이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던 중 청년은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목사님. 저는 요즘 평화의 왕 예수님을 기다려요. 지금 일어나는 이 전쟁, 그리고 전쟁같은 우리의 삶 가운데 평화의 주
거리를 거닐다보면, 반짝이는 전구들과 크리스마스 트리로 거리가 아름답게 꾸며져있다. 많은 사람들은 그 앞에서 사진도 찍고 좋은 시간들을 보내는 것을 보면 “아, 연말이구나, 성탄절이 곧 다가오는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기쁜 찬송 부르자!” 교회에서도 성탄 찬양들이 울려 퍼지고, 각 부서에서는 성탄절 칸타타를 준비하면서 아기 예수의 오심을 기쁨으로 준비한다. 예수가 오심이 우리에게 ‘기쁘다는 것이다’ 기쁨이란 무엇일까? 사전에서는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의 흐뭇하고 흡족한 마음이나 느낌] 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 안에는 악이 있다. 그리고 평생 이 악의 굴레 가운데 살아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신뢰할 수 있는가? 나 스스로 죄를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불가능할것이다. 나는 악하며, 죄 가운데 늘 있으며, 영화를 이루기 전까지 성화의 과정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한다. 우리의 악함의 가장 근본적인 죄는 무엇인가? 성경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순간부터 사람에게 죄가 들어왔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의 가장 큰 잘못은 무엇일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것? 하나님께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수고를 겪곤 한다. 수고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면 일을 하느라고 힘을 들이고 애를 씀. 또는 그런 어려움 이라고 나와있다. 우리가 잘 아는 것 처럼 '수고'는 무엇을 했을 때 느끼는 마음이기도 하며, 육체의 애씀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수고라는 단어는 나쁜 단어가 아니다. 수고를 안하는 사람이 있을까?
살아가면서 기도를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그 대상이 다를 뿐 사실 모든 사람은 ‘기도’ 라는 것을 해봤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 기도할까? 생각해보니 대부분 기도의 출발은 ‘고민’ 에서 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특별히 청년의 때는 고민의 시기이기 때문에 기도제목도 참 많다. 청년 사역을 하다 보니 정말 많은 고민을 하고 기도제목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돌아보며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부터 시작하여 지금 내가 고민하고 있고 마주하고 있는 문제들도 있다. 앞으로의 일들도 고민하고 걱정한다
식당을 가보면 가끔 성경구절이 붙어 있는 식당을 보게 될 때가 있다. 구절을 보면 ‘아 예수님 믿으시는 분이신가보다’ 라고 생각이 될 때도 있지만, 가끔은 본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사용하는 구절들이 붙어 있을 때에는 아쉽기도 하다. 얼마전 어떤 청년과 대화를 하면서 나는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나는 요즘 다짐한 것이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전하고 싶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말이라고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우리는 우리의 시선에 성경 말씀의 본래의 뜻을 모르고 나누거나 전하거나 사용할 때가 있다. 그런 구절이 참 많다. 그러
잠잠해 질 것 같았던 코로나 바이러스가 겨울이 되자 다시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하였다.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나라도 조금 괜찮아졌던 시기가 있었지만 다시 500-600명대로 진입 하면서 각 단계가 올라가고 있다. 우리나라 뿐 만인가? 미국과 유럽은 여전히 하루에 몇만명씩 걸린다고 한다. 얼마 전 뉴스를 보고 마음이 참 아팠다. 이탈리아에서는 하루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리는데 병원이 모자르고, 화장실에 시신들이 그대로 있다고 전하는 뉴스였다. 참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