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전 메시아는 이 땅 가운데 왔습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은 ‘예수=여호와는 구원이시다’ 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다고 나옵니다. [멸시] 라는 뜻은 사전적인 의미로 ‘업신 여기거나 하찮게 여기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을 살리시기위해 오신 예수님께서 사람에게 멸시를 받아 버림을 받았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되는 일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일이 실제로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왜 멸시하고 버렸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우리는 어떤 사람을 믿는다고 한다면 적어도 그 대상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알아가려 합니다. 그 사람을 알지 못하는데 “나는 당신을 믿습니다.” “나는 당신을 신뢰합니다.” 라고 말한다는 것은 어쩌면 굉장히 모순 된 말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무슨 말씀을 드리고 싶은거냐면 우리는 열심히 교회를 다니며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우리에게 와서 “당신이 믿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세요?” 라는 질문에 우린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요. 쉽게 말해 우리는 예수가 누구인지 알고 믿는지에 관한 부분입니다
얼마 전 한 청년을 심방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린 자연스럽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 이야기로 주제가 넘어갔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는 함께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다녀왔었기 때문이다. 그 일들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참 마음이 아팠다.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들이 일어났고, 그로 인하여 많은 이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던 중 청년은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목사님. 저는 요즘 평화의 왕 예수님을 기다려요. 지금 일어나는 이 전쟁, 그리고 전쟁같은 우리의 삶 가운데 평화의 주
돌아오는 10월 마지막 주는 개신교에서 ‘종교개혁주일’로 지키고 있다. 독일의 신학자이자 종교개혁의 중심 인물인 마르틴 루터 (Martin Luther)가 그 당시 종교개혁을 일으킨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어떠한 새로운 것을 바라고 꿈꾼 것이 아닌 ‘올바른 복음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함’ 이었다. 사실 ‘올바른 복음’ 이라고 말하는 것도 참 이상하다. 그렇다는 것은 ‘올바른 복음’과 ‘올바르지 않은 복음’ 이 존재한다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복음은 복음 자체의 능력과 완전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의 잘못된 믿음과 마음.